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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칠

네헤모트

by 이염(移染) 2019. 9. 27.
*스토리 스포有

@JEHOVAH_ELOHIM_

황혼, 여명님께서 제목을 지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주를 가동시켰다.






"우왁!"


방주가 작동할 때부터 평소와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공중에서 착지할 줄이야. 떨어진 곳이 잔디밭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둘러보자 안심할 상황이 아님을 이제야 인지했다. 어둡고 으슥한 이곳은 대충 묘지인 듯 했다. 조각상도 있는 걸 보니 꽤나 높은 사람들의 묘지인가 보네. 이런 생각도 잠시, 들키면 위험할 거라는 오싹한 기운이 들자 얼른 몸을 일으켜 조용히 나가기로 했건만.


"거기, 누구야?"


흑색의 단발머리 소년이 구석에 앉아있다 놀란 얼굴로 지휘사를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나 지금은 들켰다는 당혹감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 도망가야겠다. 급히 뛰어가려는 그녀의 등 뒤로 소년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소용없어, 나도 당신도 갇힌 상태니까."

"갇혀…? 너도 이런 곳에 갇힌 거야? 누구한테?"


어린아이를 묘지가 가득한 곳에 가두다니 제정신이 아니네. 지휘사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다시금 소년에게 다가가 상태를 물었으나 소년은 괜찮다는 말만 들려주었다. 괜찮을 리가 없을 텐데,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접경 도시가 아닌건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있는 지휘사를 소년이 흘끔 바라보았다. 복장부터 느꼈지만,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도 신관도 아니었다. 평범한 민간인이 이러한 비밀 묘지에 갇힐 리가 없는데. 소년은 의아함이 가득 찬 얼굴로 조금 삐딱하게 물었다.


"당신은 이곳을 어떻게 들어온 거야?"

"흠…글쎄."


훅 들어오는 질문에 본인도 모르게 대답을 얼버무렸다. 무어라 소개를 해도 이상할 상황이라 지휘사는 난감할 따름이다. 변명할 걸 생각하고 움직일 걸 그랬나. 제 머리를 감싸 쥐고는 한참 동안 생각하자, 소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불법 침입자?"

"아냐, 길을 잃어서 우연히 들어오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나갈 길을 못 찾아서-."


멋쩍게 웃으며 대강 변명을 내놓자 소년은 그녀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는지 시선을 돌렸다. 이해는 한 것 같은데 어째 머리가 모자란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뭐 다시 볼 것도 아닌데 상관없나. 나가는 길을 물어보려 했으나 소년은 지휘사를 무시한 채 무표정으로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지휘사도 일단 따라서 눈을 감아 보았으나, 배꼽시계가 하도 울어대는 통에 그만두기로 했다. 소년 옆에 두 다리를 끌어안고는 소년을 계속 바라보았다. 역시 어딘가 낯이 익어. 하지만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아 답답함만 쌓여 간다.


"혹시 이름이 뭐야?"

"명상하는 데 방해돼. 그리고 왜 내가 당신한테 이름을 알려줘야 하지?"


딱딱하기는, 지휘사는 소년 모르게 눈을 흘겼다. 곧 있으면 방주가 버티질 못 할 텐데. 그런데도 지휘사는 소년의 명상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함께했다. 아직 어린아이를 혼자 둘 수 없으니까. 한참 후에야 소년의 명상이 끝났다. 눈을 뜬 소년은 아직도 있었냐는 듯한 눈빛으로 지휘사를 바라보았다.


"나가는 길 전혀 모른다니까…. 방해는 안 했잖아. 그것보다 넌 왜 여기서 홀로 있는 거야, 누가 널 괴롭혀?"

"괴롭힌다고 봐야 하나, 나보다 멍청한 주제에 나를 벌했지. 아직도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분명 난 가르침 대로했는데 말이지."

"너만 한아이가 잘못 했으면 얼마나 했다고 이런 찬 곳에 버려놓을까…. 너무했다. 네가 무얼 했길래 벌까지 내리는 거야?"

"이도 다 빠지고 숨도 버겁게 쉬던 할아버지였어. 난 전에 교회로 왔던 늙은 개한테 주사를 놓던 신관처럼 할아버지를 신의 곁으로 보내기로 했지. 그런데 그 늙은 개는 되면서 할아버지에게는 주사를 놓으면 안 된다는 거야. 어째서지? 그런 사람이 살아봤자 신께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아…. 순간 머리가 띵하고 아파지는 것 같았다. 그래 혼낸 사람이 왜 이런 벌을 줬는지 알 것 같으면서도 이 아이의 대답이 너무나도 순수해서 무어라 말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어려운 이야기다. 소년 말대로라면 늙은 개와 할아버지는 같은 소중한 생명인데 어느 쪽은 안락사를 자연스럽게 시키면서 사람은 소중하니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 혼을 내니, 아이의 입장에서는 공평하지 못하다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가 생각한 것 치고는 살벌한 의견이었다.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사이였을지도 모르는데 슬픔 하나 없이 그를 죽이려 하고 있으니, 확실히 어른들이 보면 경악할만하다. 소년은 지휘사가 어떠한 반응을 할지 살펴보고 있었다. 이럴 땐 어떤 얼굴로 소년을 봐야 하나 싶어 고민하다 근처 교회에서 알던 신관들을 한 명씩 떠올려 보았다.


"흠, 그러네 네말이 맞긴 하다. 어느 쪽도 소중한 생명인데, 동물로서는 공평하지 못하다고 따질지 몰라. 하지만 말이야…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죽음이라는 건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이기도 해. 아마 너의 행동으로 인해 더 빨리 이별할까 봐 두려웠던 게 아닐까. "

"아니, 그저 멍청해서 신의 뜻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거야. 늙어서 약해진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필요 없어. 신은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아. 그러니 내가 보내주려 한 거야. "


소년의 눈빛은 무서울 정도로 강렬해서 지휘사는 주춤하며 물러섰다. 죽음의 슬픔을 모르는 눈이었다. 그저 그것이 옳다고만 알고 있을 뿐이다. 이런 소년의 생각을 이상하다며 벌을 주곤 밀어내지 않고 이해해주려 노력했다면 소년이 조금 정도는 사람을 잃는 슬픔에 대해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곳은 …의 …정원일 뿐이니까."


소년의 말이 이명에 섞여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지휘사는 어딘가 이끌려질 것 같은 느낌을 저항하며 소년을 지켜보았다. 제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던 소년이 뒤를 돌아 지휘사를 바라보더니 의아한 얼굴로 지휘사에게 물었다.



"당신, 왜 울고 있는 거야?"







"헉."

정신을 차려보자 중앙청 안이었다.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자 익숙한 건물의 색이 지휘사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그 소년, 정말 낯이 익었는데 누구일까. 아무도 없는 캄캄한 묘지 속에 소년만이 그곳에 서 있었기에 알 수 있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신을 언급했던 기묘한 소년뿐. 교회 쪽 아이인가. 그렇다면 가볼 곳은 하나.



"밤늦게 무슨 일이신가요?"


급한 마음에 시간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온 것을 후회했으나 결심이 서자 문을 작게 두드렸다. 똑똑 소리에 세레스가 문을 열어주었다. 세레스는 다급해 보이는 지휘사의 눈가를 쓸어주었다.


"좋지 못한 일이 있었나 보네요. 무슨 일 있으셨나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물어볼 것이 있어서…."

"어떤 일이신가요?"

"그게…."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지휘사의 등 뒤로 오싹한 기운이 뻗쳐 저도 모르게 급히 몸을 돌렸다. 아…. 그냥 이스카리오였다. 위협을 가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그랬지. 이스카리오도 의아한 표정으로 지휘사에게 무슨 일이 있냐며 물었다. 이 얼굴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궁금한 게 있어서 왔었는데…, 미안해 다음에 다시 물어보러 올게."


괜찮다는 말이 귓가에 들렸으나 지휘사는 서둘러 교회를 빠져나갔다. 여전히 알 수 없는 행동에 세레스와 이스카리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달려 나가는 지휘사의 등을 바라보았다.
 
궁금하다면 다시 방주를 가동시키면 된다.

사적인 일에 쓰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 소년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일 소년에게 소중했던 사람을 잃고 나서 깨달은 다면 너무도 처참하지 않은가. 부디 좋은 영향을 끼치길 바라며 방주를 가동시켰다.







"악!"

이번에도 공중에서 떨어진 덕에 코를 바닥에 받았다.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는데, 새하얀 손이 지휘사에게 내밀어진다. 손을 살며시 잡으며 올려다보니 헉, 순간 당황해서 손을 놓칠 뻔했다. 분명 소년과 매우 닮은 얼굴이었으나 머리가 하얗게 질렸다. 저를 내려다보는 눈빛, 약간 매서운 분위기라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너, 묘지에서 만났던…."

"한 번 만난 건데, 기억하고 있네."


잡아준 손을 잡고 일으켜진 소년은 여전히 삐딱한 구석이 있었으나, 전보다 많이 피폐해지고 어딘가 슬퍼 보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물었다가는 슬픔이 폭발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멍하니 소년을 바라보고 있자, 소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당신도 내가 불량품 같이 느껴져?"

"뭐…?"

"맞잖아, 그래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 아니야?"


소년이 지휘사를 두 손으로 밀쳐내었다. 꽤나 힘이 들어가 있어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밀려난 지휘사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가뜩이나 하얀 손이 주먹을 꽉 쥐는 탓에 썩을 것처럼 파래진다. 지휘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뭐라 말해도 다 동정같이 느껴질까봐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지식의 자신감이 있었고 순수했는데 지금은 꼭 마음이 망가져 피폐해진 사람 같이 느껴졌다. 지휘사는 그저 다가가 소년의 등을 토닥거렸다.


"아니야. 넌 불량품 같은 거 아니야. 신도 이런 너를 미워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너를 망가뜨리지 마."

"웃기지 마, 이렇게 되고 나서 하루종일 신을 불렀어. 하지만 신은 한 번도 대답해 준 적이 없어. 내가 필요 없으니까 그런 거잖아!"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너를 탓 하지…."


머리가 울렁거려서 그 다음 말을 차마 내뱉지 못했다. 안 되는데 벌써 돌아간다니, 이대로 돌아간다면 소년은…. 소년이 무어라 화내며 말하고 있었으나, 이명이 심하게 들려서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조금만 더…, 제발.







"이제 일어날 시간입니다. 대장."


다정한 목소리에 지휘사는 눈을 번쩍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중앙청 내부, 방주가 가동 중지되었나 보다. 아쉬움을 뒤로 한 체 목소리가 들린 곳에 눈길을 옮겼다. 이스카리오가 서 있었다.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때는 꽤나 감정적이고 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어 현재의 소년을 알아보기 어려웠다고 나름의 변명을 하고 싶다.



"이스카리오가 이 시간에 중앙청에는 무슨 일이야?"

"개인 정보를 너무 깊숙하게 아시려 하는 것 같아서 막으러 왔습니다."

"아…미안해, 너인지 정말 몰랐어."

"그때의 전…꽤나 감정적이었거든요. 부끄러운 과거를 들켜버렸네요."


이스카리오는 잠시 생각에 잠겨 보였으나 물어보려는 태도에 미소를 지으며 넘겼다. 지휘사는 살며시 일어나 이스카리오에게 다가가 두 팔을 벌려 보았다.


"뭐 하시는 건가요?"

"그때처럼 한 번 안아봐도 돼?"


조금은 조심스러운 눈치로 물어보자 이스카리오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사 보다 훨씬 커진 소년은 다행히 멀쩡한 어른이 되어있었다. 그때 본 소년은 망가지기 일보 직전이라서 자칫하면 죽어버릴까 봐 걱정했는데. 품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이스카리오가 부드럽게 지휘사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뭐가 그리 슬프신가요?"

"…그냥, 슬프기도 하고 안심도 되고 감정정리가 잘 안 돼."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 덕에 목소리에도 울음이 섞여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스카리오의 품을 안고 울며 안도했다. 이스카리오는 작게 조소를 지으며 무언가를 손에 꼭 쥐었으나 지휘사는 눈치 채지를 못 했다.


"이런 의미 없는 친절은 당신에게 그리 좋지 않아요. 남들은 그런 친절에 기대고 싶어 하거든요."


뭐가? 라고 물어보기도 전에 파란 가시가 지휘사의 심장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 체 이스카리오의 웃옷만을 강하게 부여잡으며 버티는 것이 고작. 허억, 숨조차도 막히는 기분에 이스카리오를 겨우 올려다보았다. 눈이 감기기 직전에 이스카리오가 지휘사의 뺨을 쓸며 말했다.


"어릴 적 갑자기 나타난 당신을 보고는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저런 능력을 갖춘 걸까, 저걸 손에 넣는다면 신의 곁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당신을 가지면 신이 저를 보러 와주실지도 모르겠군요. "


고맙다는 의미로 제 옷을 쥐고 있던 지휘사의 손바닥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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