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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칠

[이스여휘] Lavender

by 이염(移染) 2019. 10. 4.





"거기서 뭐하고 계시는 건가요?"


이스카리오의 목소리를 들은 지휘사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채 목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도 인도 한 가운데에 중앙청 지휘사가 쭈그리고 앉아있다니 품위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지휘사는 오히려 무슨 일이냐는듯 고개를 갸웃이더니 몸을 돌려 제 앞에 있던 자그만한 새 한 마리를 보여주었다.


"이 새가 갑자기 앞에서 뚝 떨어져서…."

"날개가 꺽인 듯 하네요."


날개를 퍼덕이려 버둥버둥 거려보지만 왼쪽 날개가 제대로 움직이질 못 했다. 지휘사는 곤란한 얼굴로 제 뺨을 긁적거리며 새와 이스카리오를 번갈아 보았다. 긁적거리는 손은 새 부리에 쪼인듯 상처 투성이었다. 이스카리오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손을 쳐다보자 허겁지겁 옷 소매로 숨기며 화재를 돌렸다.


"새를 일단 병원에 옮기고 싶은데 새가 영 따라주질 않아서 말이야."

"새를 잡는 법이 틀려서 그런것 같네요. "


이스카리오는 자연스럽게 새의 몸을 감싸쥐자 새는 꼼짝하지 않고 주위를 살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지휘사가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바라보더니 새가 놀라까봐 소리없는 박수를 보낸다. 이스카리오는 못 하는게 없네, 대단해. 등의 말들이 계속 이어지자 이스카리오가 막았다.


"일단 새가 더 스트레스를 받기 전에 얼른 옮기도록 하죠."

"아, 이스카리오 바쁜 거 아니야? 잡는 법만 알려주면 내가 잘 데려갔다 올게."

"괜찮습니다. 이미 일을 마치고 온 길이고 그 손, 더 다치면 흉터 생길거예요."


인상좋은 미소를 지으며 지휘사를 안심시키고는 먼저 발걸음을 옮기자 지휘사도 자동적으로 따랐다. 이스카리오가 연구소 주변에서 볼 일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던가? 의문이 생겼으나 일단 도움을 받는 처지에 너무 많은 의심을 하는 것 같아 생각을 관두기로 했다. 이스카리오가 아는 동물병원이 있다 해서 그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다행히 새의 치료는 오래 걸리지 않았고, 사흘 후에는 풀어주기로 했다. 사람 손을 많이 타면 새가 야생으로 돌아가는 게 힘들어 질 테니까. 휴, 지휘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이스카리오가 손을 슬며시 내밀었다.


"응?"

"손, 치료 받으셔야죠."


이스카리오는 무언의 압박감과 함께 지휘사가 손을 내줄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소매를 걷어 손을 내밀자, 이스카리오는 언제 갖고 있었는지 모를 연고와 밴드로 살이 파진 곳에 바르고 붙여주었다. 무척 능숙한 실력인 덕에 금방 끝났지만 약이 파인 살에 스며들자 쓰라렸다. 으으, 작게 신음을 뱉자 이스카리오는 자업자득이라며 빙긋 웃었다. 이럴때 보면 성격 나쁘다니까.







"오늘도 여기 계시는 군요."

"아…그게 먹이를 좀 주고 싶어서."


사흘 후, 새는 말끔이 나았다. 다행히 심한 상처는 아니었고 날개뼈도 올바르게 굳혀진듯 하다. 그럼에도 지휘사는 늘 걱정이 되어 살펴볼 겸, 먹이를 들곤 이곳에 계속 어슬렁거리는 거다. 이스카리오는 고개를 지으며 말했다.


"안됩니다, 대장. 그 아이는 야생의 동물, 계속 먹이를 챙겨주다 보면 스스로 살아가는 능력을 잃게 되죠."

"윽, 그건 알긴 아는데…걱정이 되니까."

"친절이 독이 될 때도 있어요. 나중에 당신이 바빠 이곳을 들를 수 없을 경우, 새가 먹이를 스스로 구하지 못하고 당신만을 기다린다면, 결국 새는 죽고 말거에요."

"그렇지만…."


알겠어….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와 침묵이 한참을 흘렀다. 아무래도 지휘사는 새가 걱정되어 쉽사리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나 보다. 고작 이 새 한마리가 뭐라고 저리 친절을 배푸는 걸까. 그래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그럼에도 이스카리오는 친절히 웃으며 지휘사의 등을 다독였다.


"잘 생각하셨어요."


이스카리오의 미소가 섬뜩하게 느껴졌지만 저 혼자만에 착각이려니 싶어 발걸음을 옮겼다. 하기야 가서 해야할 일도 많으니까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아야지. 그래도 가끔은 와서 지켜봐도 괜찮겠지…?






이스카리오와 사라진 이자크를 찾으며 순찰을 하고 있을 때였다.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심했는지 자꾸만 눈이 감겨온다. 아직 못 찾았는데, 이대로 쓰러질 순 없어…. 쓰러질 듯한 몸을 이끌며 돌아다니던 도중, 단말기를 통해 이자크의 정보가 들어온 것을 확인해 얼른 중앙청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서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유를 알수 없군요. "

"이스카리오? 어디있었어. 이자크는, 둘다 무사한 거야?"

"지금도 그래요 대장, 당신이 쓰러졌다는 사실은 알고 계십니까?"

"아…나 쓰러졌었구나."


뒤늦게 자각한 지휘사는 제 몸을 한 번 살펴보다 멀쩡한 것 같으니 다시금 이스카리오를 쳐다보았다. 이스카리오의 심기는 그다지 좋지는 않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여긴 내방이네. 이스카리오가 이곳으로 데려온건가. 서둘러 중앙청과 교회사람들에게 알려야 겠다며 서두르자 이스카리오가 손목을 잡고는 제지했다.


"이스카리오?"

"어딜 가시려고 하시나요? 아직 몸이 온전하지 않으신 상태입니다만."

"아냐 이렇게 멀쩡한걸. 게다가 얼른 널 찾았다는 사실을 알려야…."


주변의 공기가 차가워진다. 호 하고 불면 입김이 나올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은 더 이상 내방이 아니었다. 푸른 가시가 둘러쌓인 어두운 공간에서 이스카리오와 지휘사만이 이공간에 존재했다. 이스카리오의 표정은 변화없이 입꼬리를 올리곤 지휘사를 바라보았다. 이유모를 섬뜩함에 지휘사가 주춤거리며 뒷걸음을 쳤다. 하지만 도망갈 곳은 없다.


"이곳은…어디야, 그리고 이자크는 어디에 있어?"

"이런 상황에도 다른 사람을 먼저 걱정하시네요. 지금 당신이 더 위험하다는 생각은 못 하시나요?"


이스카리오는 천천히 지휘사의 앞으로 다가왔다. 바로 뒤에 수많은 파란가시가 둘러쌓여 있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제 눈앞까지 다가온 이스카리오는 가늘고 하얀 손으로 지휘사의 뺨을 살며시 쓸었다. 차가운 체온에 저도 모르게 몸이 파르르 떨린다. 지휘사는 이스카리오를 경계하며 매섭게 노려보았으나 그것이 가소롭다는 듯 그는 눈꼬리를 휘며 웃고 있었다. 뺨을 쓸던 손은 슬 내려가 턱을 꾹 잡고는 쪽,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뭐하는…읍."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스러운 지휘사는 이스카리오를 밀어내려 했으나 몸이 꿈쩍도 움직이질 않았다.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입술이 지휘사의 입술 사이를 훑더니 말캉한 살덩어리를 집어넣는다. 서로의 입술사이로 타액이 이어지고 끊어지기를 반복한다. 더 이상 이어졌다가는 정신을 잃을까봐 지휘사는 제 입속에 들어온 살덩어리를 콱 물었다. 그제서야 이스카리오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는 재미있다는 듯 지휘사를 바라보았다.


"그때 구하셨던 새 한 마리를 기억하시나요?"


뜬금없는 이야기에 지휘사는 기억을 더듬었다. 날개가 부러졌던 새를 나은 후에도 이스카리오 몰래 먹이를 주러 찾아갔었지. 이스카리오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제 턱을 쓸며 말을 이었다.


"그 새는 어젯밤에 죽었더군요. 당신이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느라 바쁜 도중에 말이죠. "

"뭐…? 아냐 분명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잘 있었는데."

"그 새는 아마 당신이 먹이를 주려 찾아오길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게 말했지않습니까. 함부로 야생의 동물에게 먹이를 주면 안된다고 말이죠. 덕에 그 새는 당신에게 길들어져 당신만이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그리고 결과는 안타깝게도…."


지휘사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말 죽은 건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 때문에 죽었다면 그 이유는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 맞다. 함부로 정을 주지 말라던 말을 이제야 실감한다. 난 그저 그 아이가 잘 지내줬음 좋겠다는 바람 하나 뿐이었는데.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이스카리오가 손으로 훔친다.


"우시는 겁니까, 고작 그 새 한 마리로…."

"…."


아무리 멈추려 노력해봐도 한 번 터진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쉼 없이 흘리는 눈물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스카리오는 다시금 눈꺼풀 위로 입을 맞추었다. 뜨거운 눈덩이 위로 차가운 입술이 닿자 지휘사는 양 손으로 이스카리오를 밀어내었다. 증오의 눈빛으로 쳐다보며. 허나 이스카리오는 밀려나지도 멈추지도 않았다. 지휘사의 양뺨을 잡아 다시금 진득했던 입맞춤이 이어진다. 가뜩이나 숨쉬기가 힘든데 숨이 더욱 막혀와 답답해진다.


이 꿈에서 깨어나면 새가 무언가에 찔려 죽은 시체를 찾아내겠지. 그리고 당신은 증오가 담긴 눈으로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런 당신도 꽤 마음에 들지만 처음으로 본 당신의 눈물은 가슴의 어딘가가 따끔거려 숨쉬기가 힘들다. 당신은 그 새에게 정을 주면 안됐다. 그리고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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